“코로나19로 죗값” 파라오 슬롯 막아 母 사망했는데 한 말 [그해 오늘]

폐암 말기 환자 병원 이송 중 접촉사고 낸 택시기사
“죽으면 책임진다”며 10여분간 막아…환자는 파라오 슬롯
유족 “살인 아닌 업무방해죄만 해당된다니” 한탄
결국 징역 1년 10개월에 그쳐…파라오 슬롯 죗값”
  • 등록 2025-03-12 오전 12:01:02

    수정 2025-03-12 오전 12:01:02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21년 3월 12일 폐암 말기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 중이던 사설 파라오 슬롯와 접촉사고가 난 뒤 이를 운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환자를 결국 숨지게 한 택시기사의 항소심 선고가 진행됐다.

이날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3부(김춘호 부장판사)는 특수재물손괴·업무방해·사기·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공갈미수 등 6개 혐의로 기소된 택시 기사 A씨(당시 32세)의 2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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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A씨가 2020년 6월 8일 오후 3시 15분쯤 서울 강동구 고덕역 인근 도로에서 사설 파라오 슬롯를 막아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앞서 검찰은 같은 해 2월 “원심 판결이 너무 가볍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감경된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파라오 슬롯 운전기사 등)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면서 “나이나 범행 정황 등을 감안할 때 원심 선고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고 판시했다.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살인죄? VS 업무방해?


A씨는 2020년 6월 8일 오후 3시 15분쯤 서울 강동구 고덕역 인근 고덕평생학습관 앞의 도로에서 환자를 태우고 강동경희대학교병원으로 이동하던 사설 파라오 슬롯를 10여분간 막아섰다. 그 이유는 파라오 슬롯가 차선을 변경하던 중 A씨가 몰던 법인 택시와 접촉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응급차 기사는 A씨에 명함을 건네며 “차 안에 폐암 말기 환자가 타고 있으니 일단 후송을 마친 뒤 보험처리를 하겠다”고 말하고 이동하려 했지만, A씨는 차량 앞를 막고 “내가 파라오 슬롯를 안 해본 줄 아느냐?”, “사건 처리가 먼저다. 환자가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파라오 슬롯 안에 있던 환자의 얼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환자의 상태를 의심하는 등 이송을 방해했다.

결국 10여분 간의 말다툼 끝에 119파라오 슬롯를 다시 불러 환자를 뒤늦게 병원으로 옮겼지만 골든 타임을 놓친 환자는 병원 도착 5시간 뒤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하고 있었으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파라오 슬롯한 환자의 며느리 B씨가 당시 사고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해 5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청원에 참여하며 공분이 일자 사건의 방향이 바뀌었다. 경찰은 인원을 투입해 A씨의 행동과 피해자의 파라오 슬롯간 관련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사고 후 고인의 아들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A씨를 향해 “당신도 부모가 분명히 있을 텐데 부모님이 나이 들고 몸이 약해지고 응급차를 이용할 일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그랬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경찰이) 현행법상 적용할 법이 업무방해죄라더라”라며 “(A씨가 파라오 슬롯를 막은 상태에서)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라고 한 말이 가장 가슴 아프다. 조금만 더 빨리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온라인상에서도 A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사고 지점과 강동경희대학병원과 거리는 직선으로 약 300m였다. 도보로 이동해도 5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거리였던 것. 블랙박스 영상에 사고 장면이 찍혔고, 파라오 슬롯의 번호판을 적어놓고 경찰에 사고 신고를 하는 등 후속 조치를 해도 됐을 텐데 골든타임이 중요한 환자가 탄 응급차를 막아서야만 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또 A씨가 폐암 말기 환자라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사망하면 책임진다”며 파라오 슬롯를 운행하지 못하도록 10여분을 막아선 행위 자체가 살인 행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합의금 갈취하려 사고”…살인죄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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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A씨가 2020년 7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찰은 2020년 7월 A씨에 미필적 고의 살인죄 혐의를 검토하며 수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 A씨가 2016년에도 파라오 슬롯와 고의사고를 낸 뒤 응급대원에게 240만 원을 챙긴 것과 이후에도 6차례에 걸쳐 고의 사고를 내고 합의금과 치료비 명목으로 2000여만 원을 챙긴 보험사기 이력이 드러났다.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사설 파라오 슬롯 업무 방해 혐의와 응급의료 방해 혐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살인죄 등이 적용됐다. 여기에 추후에 밝혀진 보험 사기 혐의와 구급대원에 대한 특수폭행 등도 포함됐다.

유족은 A씨를 △살인 △살인미수 △과실치사 △과실치상 △특수폭행 치사 △특수폭행 치상 △일반교통방해 치사 △일반교통방해 치상 △응급의료법 위반 등 9개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듬해 3월 12일 열린 항소심 선고에서는 1심보다 형량이 적은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했다.

이날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A씨 측 변호인은 “합의금 갈취를 위해 접촉사고를 낸 건 사실이며 피고인이 모든 범죄사실을 자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라오 슬롯를 들이받은 건) 피고인의 공격적 성향이 발현된 것이며 죄질이 나쁘다고 평가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정신병동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며 불우한 가정형편을 가진 사정이 있다”며 “피고인의 정서적 장애가 이번 사건과 같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차 앞 범퍼가 떨어지고 욕설을 듣게 되자 이런 형태로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구속된 뒤 동부구치소 수용 과정에서 코로나19에 확진된 사실에 대해 “자신의 처지가 모두 파라오 슬롯이라고 여기며 묵묵히 반성하고 있다”며 “추후에는 기존에 취득한 장례지도사 자격을 이용해 장례지도사로 일할 계획이다. 피고인이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선처를 요청했다.

이날 법정에 선 A씨도 “제 성질을 죽이지 못해 다른 많은 분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 것 같아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결국 법원은 징역 1년 10개월을 판결했고 A씨 측과 검찰 모두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으면서 형이 확정됐다.

같은 해 4월 23일 경찰도 A씨의 살인 혐의 등에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대한의사협회 감정 결과 ‘고의적 이송 지연과 파라오 슬롯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택시기사의 행위가 환자를 파라오 슬롯케 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유족 측은 뉴시스에 “피해자 아들은 낙담하고 있다”면서 “A씨로부터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고 어떤 권리를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답답하다”며 억울함을 나타냈다.

다만 피해자의 유족들이 A씨에 낸 5000만 원 청구 민사 소송에서 법원이 위자료 청구 중 3000만 원을 인정하며 원고 일부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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